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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현미경 이미지는 섭씨 -160도의 뇌 단면을 보여줍니다. 왼쪽의 조직은 유리화 과정을 통해 보존된 반면, 오른쪽의 조직은 결정화 및 균열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출처: 알렉산더 저먼
입체 현미경 이미지는 섭씨 -160도의 뇌 단면을 보여줍니다. 왼쪽의 조직은 유리화 과정을 통해 보존된 반면, 오른쪽의 조직은 결정화 및 균열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출처: 알렉산더 저먼

데이터를 장기 보관할 때 우리는 콜드 스토리지에 넣어두죠. 그런데 만약 뇌 조직 자체를 콜드 스토리지에 넣어뒀다가, 몇 년 뒤 다시 꺼내 정상 작동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인데, 독일 연구진이 여기에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영감을 준 건… 시베리아 도롱뇽

연구진이 참고한 건 의외로 작은 양서류, 시베리아 도롱뇽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영하 50도에 가까운 환경에서 동면하고, 영구동토층에 수십 년간 갇혀 있다가도 따뜻해지면 멀쩡히 활동을 재개한다고 해요. 일종의 '무손실 슬립 모드'를 자연에서 구현한 셈이죠.

비결은 간에서 만드는 글리세롤이라는 천연 부동액입니다. 체내 어는점을 낮춰서 얼고 녹는 과정에서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보통 극저온이 생물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에를랑겐대학병원 분자신경학과 알렉산더 게르만 박사는 "얼음 결정 형성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정이 세포를 기계적으로 손상시켜서, 조직의 섬세한 나노 구조를 파괴해버린다는 거죠. 디스크에 비유하자면, 얼음 결정이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긁어버리는 배드 섹터인 셈입니다.

핵심 기술: 결정화 대신 '유리화(Vitrification)'

그래서 등장하는 게 유리화입니다. -130도 이하로 냉각하면 조직이 굳긴 하는데, 이때 세포 안팎의 물이 얼음 결정이 아니라 유리 같은 상태로 전이됩니다. 유리도 단단하긴 하지만, 분자가 결정처럼 질서정연하게 배열되는 대신 무작위로 배치돼 있어요. 즉 데이터를 손상 없이 그대로 동결 압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인간 배아를 수년간 보관할 때도 이 원리를 씁니다.

문제는 뇌였습니다. 뇌는 수억 개의 신경세포가 시냅스라는 무수한 접점으로 연결된, 말하자면 초고밀도 네트워크예요. 기존 유리화 기술은 동결 방지 물질이 세포에 독성을 일으키거나 이 정교한 시냅스 네트워크를 망가뜨렸습니다. 세포는 살아남아도 연결 구조(아키텍처)가 깨져서 제 기능을 못 했던 거죠. 노드는 살았는데 토폴로지가 붕괴된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결과: 해동 후 신호가 '자발적으로' 다시 흐르다

연구진은 동결 보존제 조성과 냉각 과정을 최적화해서 신경 조직을 온전히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설치류 뇌에서 기억 저장을 담당하는 해마를 -130도까지 냉각한 뒤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했더니, 나노 구조가 동결 과정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진짜 놀라운 건 해동 이후입니다. 게르만 박사는 "해동 후 해마에서 전기 신호가 자발적으로 다시 형성됐고, 신경망을 통해 정상적으로 전파됐다"고 밝혔습니다. 시스템을 콜드 부팅했더니 프로세스가 알아서 다시 돌기 시작한 셈이죠.

여기서 더 나아가 FAU의 팡 정 박사는 시냅스에서 **장기강화(LTP)**까지 유도되는 걸 확인했습니다. 자주 쓰는 시냅스가 강해져서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현상인데, 이게 학습과 새 기억 저장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단순히 켜진 정도가 아니라, 학습 기능까지 살아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활용처: 질병 연구부터 우주여행까지

당장의 실용적 가치는 의료 연구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뇌전증(간질) 환자는 수술 중 신경세포를 제거하는데, 이런 샘플을 보관해뒀다가 수년 뒤 약물 테스트에 쓸 수 있습니다. 병든 조직을 동결 보존하면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요. 일종의 '환자 맞춤형 테스트 환경 스냅샷'을 떠두는 셈입니다.

그리고 더 먼 미래의 가능성. 게르만 박사는 언젠가 생명체 전체를 일종의 인공 동면 상태에 넣었다가 깨우는 것도 꿈꿉니다. "우주여행이나, 현재로선 치료법이 없는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고칠 수 없는 병이라도, 나중에 치료법이 나왔을 때 다시 깨어나면 되니까요. 말 그대로 **'미래로 작업을 예약(schedule)'**하는 발상입니다.

해당 연구는 지난 3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습니다. 데이터 백업하듯 사람을 백업하는 시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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