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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세포
이로운 세포로구만!

면역 세포라고 하면 보통 적을 잡아먹거나 독을 쏘는 모습을 떠올리죠. 그런데 자기 몸을 폭탄처럼 터뜨려서 주변의 적까지 함께 없애버리는 세포가 있다면 어떨까요?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진짜로 그런 세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작고 단순한 생물, **납작벌레(플라나리아)**에서요. 좀 으스스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이라 풀어볼게요.

주인공은 '재생의 달인' 플라나리아

먼저 이 벌레부터 소개할게요. 플라나리아는 생물 시간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거의 초인적인 재생 능력으로 유명한 생물이죠. 몸을 반으로 자르면 두 마리가 되는 그 녀석입니다.

연구진이 발견한 새 세포의 이름은 **'럽토블라스트(ruptoblast)'**예요. 이 세포는 몇 초 만에 격렬하게 자폭하면서 주변 세포를 파괴하고,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사람의 면역 체계에서는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에요.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이 연구의 책임저자 보 왕 교수는 "세포가 폭탄처럼 그냥 터져서 주변 세포를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벌레' 실험에서 우연히 발견

이 발견은 좀 엽기적인(?) 실험에서 시작됐어요. 연구원 추 차이는 "플라나리아가 자기 조직과 남의 조직을 구별할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벌레를 세로로 자른 뒤, 다른 벌레의 조직과 붙여서 일종의 '프랑켄슈타인 벌레'를 만들었어요.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플라나리아는 자기 조직은 척척 재생하면서도, 남의 조직은 거부하더라는 거예요. 마치 사람이 장기 이식을 거부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거부하는 방식이 사람과 전혀 달랐습니다. 차이 연구원의 표현이 생생해요. "엄청난 염증 반응이에요. 불이 나서 경보가 울리고, 세포들이 그냥 펑펑 터지는 거죠."

호르몬 하나가 부른 극단적 반응

대체 뭐가 이 폭발을 일으켰을까요? 열쇠는 **'액티빈(activin)'**이라는 호르몬이었습니다.

원래 액티빈은 플라나리아 생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 호르몬이 많으면 재생 능력이 떨어지고, 적으면 번식에 문제가 생기죠. 그런데 차이 연구원이 보니, 벌레가 남의 조직을 거부할 때 액티빈 수치가 확 치솟고 만성 염증이 뒤따랐습니다. 이 벌레들은 보통 며칠 안에 죽었고요. 멀쩡한 벌레에 액티빈을 주사해도 똑같은 염증이 생겼습니다.

세포 수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보려고, 연구진은 살아있는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레이저로 세포를 분석했어요. 그랬더니 액티빈에 반응하는 특정 세포 무리가 포착됐습니다. 이 세포들은 터져 열리면서 주변 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쏟아낸 뒤, 5분 안에 사라졌어요. 연구진은 이 새로운 과정을 **'럽토시스(ruptosi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핵심은 '속도', 눈 깜짝할 새 폭발

럽토시스의 가장 특이한 점은 압도적인 속도예요. 차이 연구원의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일부 포유류 세포나 박테리아도 폭발하듯 죽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아주 길어요. 몇 시간에 걸쳐 구멍으로 천천히 새어 나오는 식이죠. 그런데 럽토시스는 수초에서 수분 안에 일어납니다."

다른 세포들이 천천히 김 빠지듯 죽는다면,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순간 폭발인 셈이죠.

의학에 쓸 수 있을까? 의외로 '정밀'했다

연구진은 이 럽토블라스트를 여러 표적에 시험해봤어요. 대장균, 사람의 신장 세포, 쥐의 혈액 세포까지요. 결과는? 세 가지 모두 성공적으로 파괴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발견. 그 효과가 폭발 지점 바로 근처에만 국한됐다는 거예요. 연쇄 반응도 없고, 오래 가는 독성도 없었습니다. 폭탄치고는 의외로 '정밀 타격'이었던 셈이죠. 왕 교수는 바로 이 정밀함 덕분에 이 메커니즘이 세균 감염이나 종양을 겨냥한 치료법 개발에 쓰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딱 나쁜 놈만 골라 터뜨릴 수 있다면 굉장히 유용하겠죠.

또 하나 특이한 점. 럽토블라스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T세포나 호중구 같은 면역 세포와 달라요.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혈액 세포가 아니라 **분비샘 세포(glandular cell)**였습니다. 액티빈에 자극받으면 독성 물질을 빠르게 뿜어내도록 분비 기관을 강화하는데, 세포 안에서 칼슘이 급격히 방출되면서 이 과정을 돕는다고 해요.

왜 사람에겐 이런 게 없을까?

흥미로운 의문이 생기죠. 그럼 왜 우리 인간은 이런 멋진(?) 자폭 세포가 없을까요?

차이 연구원이 다른 동물들을 뒤져봤더니, 이 세포는 플라나리아 같은 원시적인 좌우대칭 동물에서만 발견됐어요. 아주 오래된 진화적 기원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의 추측이 그럴듯해요. 척추동물(우리 포함)은 이 전략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럽토시스로 인한 조직 손상을 복구하려면 엄청난 재생 능력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그게 없거든요. 반면 플라나리아는 줄기세포가 풍부해서 손상을 금방 수리하니까, 이런 과격한 방어술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거죠. 재생 능력이 받쳐주니 자폭도 부담 없다는 논리입니다.

정리하며

요약하면, 연구진이 ① 재생의 달인 플라나리아에서 ② 몇 초 만에 자폭해 주변 적을 없애는 새 면역 세포 '럽토블라스트'를 발견했고 ③ 그 정밀한 파괴력이 감염·종양 치료에 응용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해요. 왕 교수의 말처럼, 현대 의학 연구는 주로 포유류에 집중돼 있지만 정작 가장 놀라운 생물학적 발명품은 수억 년 전 우리와 갈라진 엉뚱한 생물들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어쩌면 미래 암 치료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수도 있다는 발상. 자연은 정말 곳곳에 보물을 숨겨두는 것 같습니다. 해당 연구는 셀(Cell)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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