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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 '변형 단백질'을 떠올립니다. 정상적인 뇌 단백질이 잘못 접히면서 감염성을 띠게 되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뇌를 망가뜨린다는 이야기죠. 지난 40년간 광우병을 설명해온 핵심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설명이 '절반만 맞았을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습니다.
감염성 프리온이 없어도 뇌 손상이 일어났다
앨버타대학교 연구진이 이끈 이번 연구는, 감염성 프리온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도 프리온병과 유사한 뇌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대신 지목된 것은 지질다당류(LPS)라는 강력한 세균 내독소가 유발하는 만성 염증이었습니다. 이 염증 하나만으로도 비슷한 신경퇴행성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프리온병은 보통 뇌의 정상 단백질이 비정상적이고 감염성을 띤 형태로 잘못 접히면서 발생합니다. 이 과정은 광우병으로 더 잘 알려진 소해면상뇌증(BSE) 같은 질환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그보다 더 넓은 생물학적 문제를 지목합니다. 감염성 프리온이 관여하기도 전에, 염증이 이미 뇌를 손상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이자 농업·생명·환경과학대학의 영양면역생물학자인 부림 아메타이는 "이는 이런 종류의 뇌 질환이 오직 프리온이나 잘못 접힌 단백질만의 문제라는 기존의 지배적 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러 과정이 서로를 부추긴다
연구진에 따르면, 신경퇴행은 단 하나의 방아쇠가 아니라 여러 과정이 서로 얽히며 진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염증은 뇌의 방어 체계를 약화시키고, 세포에 과부하를 걸며, 단백질이 잘못 접히도록 부추기고, 나아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켜 추가적인 손상을 더합니다.
아메타이는 "이 세 가지 과정이 서로를 부추긴다"며 "이는 우리가 단순히 잘못 접힌 단백질만이 아니라, 염증과 면역 건강까지 함께 겨냥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영국 광우병 대참사의 미스터리를 풀 단서
이번 발견은 1980~90년대 영국 축산업을 초토화시켰던 광우병 위기의 미해결 의문 하나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시 감염된 소고기를 먹은 뒤 160명 이상이 사망했고, 400만 마리가 넘는 소가 도살됐습니다.
아메타이는 소에게 먹인 동물성 사료 속 내독소가 BSE의 확산이나 심각성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번 연구는 당시 발병에 연관됐던 사료 유형인 육골분, 혈분, 우지에서 높은 수준의 LPS 오염을 발견했습니다.
생쥐 모델 실험에서는 LPS만 피부 아래에 주입했을 때 40%의 사례에서 해면상 뇌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증상은 BSE와 관련 질환에서 보이는, 뇌 조직이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는 특유의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LPS를 실험실에서 만든 변형 단백질과 함께 투여하자 그 비율은 50%까지 올라갔습니다. 두 경우 모두, BSE를 일으키는 자연 발생 감염성 프리온이 없는데도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손상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실제 BSE 같은 프리온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LPS로 인한 염증이 더해지면 뇌 손상이 급격히 악화되어, 감염 후 200일 이내에 100% 사망에 이른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왜 스코틀랜드보다 광우병이 많았을까
이 연구는 왜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스코틀랜드보다 BSE 사례가 훨씬 많았는지에 대한 가능한 설명도 제시합니다. 아메타이는 가축 사료를 만드는 렌더링(rendering, 동물 부산물 가공) 방식의 차이를 지목합니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공장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과정에서 헥산이라는 중요한 물질을 제거했다"며 "이 용매는 지방 추출뿐 아니라 육골분에서 LPS를 녹여 제거하는 데도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반면 스코틀랜드의 렌더링 공장들은 헥산 처리 단계를 그대로 유지했고, 아마도 그 덕분에 BSE 사례가 현저히 적었을 것"이라며 "이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던 사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메타이는 오염된 사료에 대한 만성적 노출이 젖소의 다른 위험 요인들과 결합했을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출산 직후의 고곡물 사료 급여와 증가한 '장 누수(leaky gut)'는 전신 염증을 촉진할 수 있고, 이것이 신경퇴행성 질환이 발생할 조건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이는 헥산 단계를 제외한 것이, 그 자체만으로 신경퇴행을 유발할 수 있는 오염된 사료를 남겼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이것이 BSE 유행이 왜 그런 지리적 패턴을 따랐는지를 설명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인간 질병으로 이어지는 함의
아메타이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가축 사료와 식품 안전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독소 오염이 프리온성 뇌 손상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렌더링 방식과 사료 모니터링은 여전히 중요한 안전장치로 남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적절한 렌더링 공정과 더 나은 사료 안전성에 관한 BSE 유행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예방의 길은 분명하다. 내독소 제거 공정을 유지하고 오염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산업적 사료 급여 시스템은 신경퇴행이 발생할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메타이는 이번 연구가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을 포함한 인간의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를 이끄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이는 내독소가 그런 질환 전부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아니며, 염증과 세균 독소가 훨씬 더 큰 퍼즐의 '조절 가능한 한 조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는 항염증 의학이라는 도구 전체를 열어준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세균 내독소가 발견된 바 있으므로, 치매를 줄이는 위험 요인들, 즉 운동과 항염증 식단, 장 건강, 대사 건강 등이 부분적으로는 내독소 부담을 줄임으로써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런 질환들은 복잡하지만, 만약 내독소 노출이 전체 사례의 20~30%에만 기여한다 하더라도, 이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을 통제하는 것만으로 수백만 명을 구할 수 있다"며 "우리가 심장병을 예방하듯, 평생에 걸쳐 염증 위험 요인을 관리함으로써 일부 신경퇴행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 거의 없던 분야에서, 그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수십 년간 '단백질 하나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광우병. 하지만 이번 연구는 그 뒤편에 세균 독소와 만성 염증이라는 또 다른 공범이 숨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광우병뿐 아니라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같은 난치성 뇌 질환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조금씩 바꿔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논문: Seyed Ali Goldansaz 외, "Lipopolysaccharide and Recombinant Prion Protein Induce Distinct Neurodegenerative Pathologies in FVB/N Mice",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2025년 6월 28일), DOI: 10.3390/ijms2613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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