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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분자
질소를 고체로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약 78%는 질소입니다. 너무 흔해서 평소엔 존재조차 잊고 지내는 기체죠. 그런데 이 평범한 질소를 극한의 압력으로 짓누르고 꽁꽁 얼리면, 놀랍도록 복잡하고 기묘한 고체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무려 50년이 넘도록 과학자들을 애먹여온 미스터리였습니다. 최근 이 오랜 수수께끼가 마침내 풀렸습니다.

흔한 기체의 낯선 얼굴

질소는 상온에서는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입니다. 하지만 온도를 극도로 낮추고 엄청난 압력을 가하면,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며 고체 결정을 이룹니다. 흥미로운 건, 이때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상(相)'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마치 같은 물이 얼음, 물, 수증기로 모습을 바꾸듯, 고체 질소도 압력과 온도에 따라 다양한 결정 구조를 갖습니다.

이 여러 상 중 하나가 바로 γ-N₂(감마 질소)입니다. 문제는 이 감마 질소의 정확한 결정 구조가 무엇인지, 반세기가 넘도록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수많은 실험과 이론 연구가 있었지만, 좀처럼 확답을 내리지 못했죠.

왜 이렇게 밝히기 어려웠을까

이번 연구는 중국과학원 허페이물리과학연구소 산하 고체물리연구소의 류샤오디 교수가 이끌었고, 에든버러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국제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매터 앤드 레이디에이션 앳 익스트림스'에 실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를 밝히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핵심은 이 감마 질소를 '깔끔한 단결정'으로 키우기가 어렵다는 데 있었습니다. 대신 대체로 품질이 낮은 분말 형태로 뭉쳐지다 보니, 일반적인 구조 분석 기법으로는 명확한 답을 얻기가 힘들었던 겁니다. 흐릿한 사진으로 물체의 정확한 형태를 알아내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죠.

연구진은 이 난관을 정면 돌파했습니다. 한 가지 방법에만 의존하는 대신, 싱크로트론 X선 회절, 라만 분광법, 적외선 분광법, 그리고 밀도범함수이론(DFT) 컴퓨터 계산까지 네 가지 접근을 총동원한 겁니다. 그리고 이 서로 다른 방법들이 내놓은 결과가 하나로 맞아떨어지면서, 마침내 그동안 경쟁하던 여러 후보 모델 중에서 정답을 골라낼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감마 질소는 각 단위 격자 안에 두 개의 질소 분자를 품은 '단사정계 P2₁/c' 구조를 취한다는 것. 이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이론적 예측을 실제로 확인해준 결과이자, 이 상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은 압력·온도 범위를 차지한다는 사실까지 함께 밝혀낸 성과입니다.

뜻밖의 범인, '무거운 질소' 동위원소

이번 연구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 이 구조 규명을 방해해온 골칫거리 중 하나가, 과거 라만 측정에서 자꾸 나타나던 '설명되지 않는 여분의 진동 신호'였습니다. 제안된 구조와 아귀가 맞지 않는 이 신호 때문에, 연구자들은 혹시 완전히 다른 결정 구조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번 연구는 이 수상한 신호의 정체를 밝혀냈습니다. 놀랍게도 이건 다른 결정 배열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질소-15' 분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질소는 질소-14인데, 자연에는 이보다 살짝 무거운 질소-15 동위원소가 극소량 섞여 있습니다. 이 무거운 질소가 만들어내는 약한 진동이, 압력이 높아지면서 점점 일반 질소의 강한 진동에 가까워졌고, 결국 두 신호가 서로 간섭을 일으켰던 겁니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페르미 유사 공명(Fermi-like resonance)'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십 년간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던 유령의 정체가, 알고 보니 극소량의 무거운 질소가 벌인 장난이었던 셈이죠.

사촌 격인 또 다른 상과의 연결고리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 감마 질소가 또 다른 고체 상인 θ-N₂(세타 질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발견한 겁니다. 두 상은 서로 상당히 다른 압력·온도 조건에서 만들어지는데도, 유사한 라만 특성과 관련된 분자 배열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닮은 구석이 많은 '사촌 사이'였던 셈입니다.


공기 중에 흔하디흔한 질소 하나에도, 극한의 조건에서만 드러나는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풀어낸 열쇠가, 자연에 극소량 섞여 있던 무거운 질소 동위원소였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물질일수록, 그 안에는 아직 우리가 다 알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논문: Jinwei Yan 외, "Revisiting the structural and optical properties of γ-N2", Matter and Radiation at Extremes (2026년 5월 13일), DOI: 10.1063/5.031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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