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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테스트 설정에서 작동하는 EPFL의 칩 기반 초고속 레이저. 이 장치는 광자 칩에 직접 매우 짧은 레이저 펄스를 생성합니다. 출처: Zheru Qiu/EPFL
실험실 테스트 설정에서 작동하는 EPFL의 칩 기반 초고속 레이저. 이 장치는 광자 칩에 직접 매우 짧은 레이저 펄스를 생성합니다. 출처: Zheru Qiu/EPFL

"실험실 책상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던 장비를 성냥 머리만 한 칩에 담았다." 이렇게만 들어도 좀 멋지지 않나요?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 연구진이 무려 20년간 풀리지 않던 난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인데요. 주인공은 '초고속 레이저'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천천히 풀어볼게요.

펨토초 레이저가 뭔데?

먼저 이 레이저가 얼마나 빠른지부터요. 이름이 '초고속(펨토초) 레이저'인데, 수백 펨토초 길이의 빛 펄스를 쏩니다. 1펨토초가 1,000조 분의 1초예요. 숫자로 쓰면 0.000000000000001초 정도. 감조차 안 잡히는 찰나의 순간이죠.

이렇게 짧은 빛이 대체 어디에 쓰이냐면,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정밀 가공, 라식 같은 시력 교정 수술,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를 구동하는 '광 주파수 빗'(노벨상 받은 기술이에요)까지. 활용처가 어마어마합니다.

문제는 이 대단한 레이저가 너무 크고 비쌌다는 거예요. 연구실 광학 테이블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덩치였거든요. 전 세계 과학자들이 20년 넘게 "이걸 칩 하나에 담을 수 없을까" 매달렸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 목표는 광자공학계의 **'성배(holy grail)'**라고까지 불렸어요.

광자 칩, 빛으로 작동하는 반도체

여기서 잠깐, '광자 칩'이 뭔지 짚고 갈게요. 우리가 아는 컴퓨터 칩(전자 칩)은 전기 신호로 작동하죠. 광자 칩은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전류 대신 빛을 다룬다는 점만 달라요. '도파로'라는 미세한 통로를 따라 빛을 이리저리 보내는 거죠. 이미 통신 분야에서 널리 쓰이면서, 예전엔 거대했던 광학 장비들을 작게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키펜베르크 교수팀이 바로 이 광자 칩 위에, 기존 테이블형 레이저에 맞먹는 성능의 초고속 레이저를 올리는 데 성공한 거예요. 최단 147펨토초 펄스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에요. "가능할 뿐 아니라, 그동안 학계가 간과해 온 놀랍도록 우아한 구조로 해냈다."

비결은 '아무도 안 쓰던' 옛 설계

그 '간과된 우아한 구조'가 바로 이번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연구진은 그동안 거의 쓰이지 않던 **'마미셰프 발진기(Mamyshev oscillator)'**라는 레이저 설계를 꺼내 들었어요.

원리를 아주 단순하게 비유하면 이래요. 빛이 지나가는 통로 양쪽에 서로 다른 빛만 통과시키는 '필터' 두 개를 세워둡니다. 강한 펄스는 통로를 지나며 스펙트럼이 넓게 퍼져서 두 필터를 무사히 통과하지만, 약한 빛은 충분히 퍼지지 못해 걸러져요. 일종의 '강한 신호만 살아남는 관문'을 둔 셈이죠. 이렇게 강한 펄스만 계속 순환시키며 레이저를 만드는 겁니다.

이 설계가 왜 똑똑하냐면, 칩 위에서 만들기 어려운 까다로운 부품이 전혀 필요 없거든요. 공동 주저자 지루 추는 또 다른 장점도 짚었어요. 광자 칩은 빛을 아주 좁은 통로에 가두는데, 이러면 빛끼리 강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보통은 레이저 펄스가 불안정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미셰프 방식은 이런 불안정에 훨씬 둔감해서, 칩에 올리기에 딱이라는 거죠. 남들이 안 보던 옛 설계가 알고 보니 이 문제의 정답이었던 셈입니다.

42cm짜리를 어떻게 성냥 머리에?

여기서 재밌는 디테일 하나. 이 레이저의 공진기 길이가 사실 42cm나 됩니다. 꽤 길죠. 그런데 이걸 구불구불 접어서 성냥 머리 정도 면적의 칩에 욱여넣은 거예요. 긴 호스를 둘둘 말아 작은 상자에 담는 것처럼요. 기존 광섬유 레이저 시스템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작습니다.

진짜 대단한 건 '대량생산'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따로 있어요. 바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광자 칩은 컴퓨터 칩과 비슷한 방식으로 웨이퍼 단위에서 찍어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한 번의 공정으로 1,000개가 넘는 레이저를 만들 수 있다고 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지금까진 크고 비싸서 일부 연구실만 쓰던 첨단 레이저를 싸게, 많이 보급할 길이 열린다는 뜻이거든요. 기술의 민주화인 셈이죠.

그래서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활용 가능성이 꽤 설렙니다. 추 연구원은 "킬로와트급 피크 출력이라 그동안 크고 비싼 실험실 레이저에 의존하던 까다로운 작업까지 해낼 수 있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환경 오염물질 탐지, 눈에 안 보이는 소재 결함 찾기, 의료 진단, 그리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원자시계까지요. 책상만 한 장비로만 가능하던 일들이 손바닥 위로 내려오는 거죠.

정리하며

요약하면, EPFL 연구진이 ① 책상을 차지하던 초고속 레이저를 ② 성냥 머리만 한 칩에 담는 20년 난제를 ③ 남들이 안 쓰던 옛 설계로 우아하게 풀어냈고 ④ 심지어 대량생산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거대한 장비가 칩 하나로 작아지는 흐름, 어딘가 익숙하죠? 방 하나를 채우던 컴퓨터가 스마트폰이 됐듯이요. 첨단 광학 기술도 그 길을 걷기 시작한 것 같네요. 가끔은 최신 기술이 아니라 남들이 지나친 오래된 아이디어에 답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해당 연구는 6월 3일 네이처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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