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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거가 그래서 번식을 못한다지..

두 종이 아직 완전히 갈라서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교배는 가능하지만 그 자손이 번식을 못 하는 애매한 경계 지점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잡종 불임은 유독 수컷에게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현상은 100년 넘게 생물학자들을 괴롭혀온 오래된 질문이었습니다. 왜 하필 수컷일까요? 최근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 질문에 꽤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습니다.

정자를 만들다가 멈춰버리는 세포

MIT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야마시타 유키코 교수와 대학원생 아드리엔 폰탄, 선임 과학자 로맹 란느가 이끈 이번 연구는 서로 가까운 두 초파리 종의 잡종에 주목했습니다. 이 두 종은 약 25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는데, 지금도 실험실에서는 교배가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수컷이 기능하는 정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이 원인을 추적한 결과, 정자 발달에 꼭 필요한 몇몇 유전자가 아주 초기 단계, 그러니까 유전자 발현의 첫 단추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유전자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 세포는 정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단백질 자체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Y염색체 위의 '거대한' 유전자들

특히 문제가 되는 유전자들은 Y염색체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로맹 란느 박사는 "이 Y염색체 유전자들은 정자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며 "크기가 매우 크고 세포가 처리하기에도 까다로운데, 잡종에서는 이 처리 과정이 완전히 실패해버린다. 잡종은 이 유전자들을 아예 만들어낼 수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유전자들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는 다른 유전자들과 똑같습니다. 세포가 먼저 DNA의 정보를 RNA로 복사하고, 이 RNA가 단백질을 만들기 전에 비암호화 부분(인트론)을 잘라내고 남은 조각들을 순서대로 이어 붙이는 과정을 거치죠. 그런데 잡종 초파리에서는 바로 이 '이어 붙이기' 단계가 자꾸 무너집니다. 조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붙이는 대신, 세포가 일부 조각의 순서를 거꾸로 뒤바꿔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RNA는 결국 제대로 기능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없고, 하필 그 유전자가 정자 발달에 필수적이다 보니 잡종 수컷은 정자를 아예 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범인은 '반복해서 복사된 짧은 DNA'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유전자들만 이런 문제를 겪을까요? 답은 이 유전자들이 유독 거대하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함의 상당 부분은 유전자 내부에 들어 있는 반복 DNA, 이른바 '위성 DNA(satellite DNA)'에서 비롯됩니다. 위성 DNA는 짧은 DNA 패턴이 연속으로 수없이 복제되어 있는 구간을 말합니다.

야마시타 교수는 "위성 DNA는 매우 긴 영역에 걸쳐 반복되는 짧은 서열들로 이루어져 있다"며 "단백질을 암호화하지도 않고, 표준적인 유전학 도구로 분석하기도 까다로워서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성 DNA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진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근연종끼리도 이 반복 서열의 버전이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에 맞춰 진화한 시스템이, 뒤섞이면 무너진다"

바로 이 지점이 잡종 불임의 핵심 열쇠로 보입니다. 각 종은 자기 자신의 반복 DNA를 처리하는 데 최적화된 세포 시스템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시켜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종의 유전 물질이 잡종 안에서 뒤섞이면, 이 시스템이 더 이상 상대방의 DNA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야마시타 교수는 이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순종인 상태에서도 이런 거대한 유전자는 처리하기가 원래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그 종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어려움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이미 진화시켜온 겁니다. 그런데 두 종을 잡종으로 결합하면, 그 시스템이 무너져버립니다." 말하자면 각자에게는 잘 맞았던 열쇠가, 다른 자물쇠 앞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

왜 하필 Y염색체가 먼저 무너질까

이번 발견은 진화 생물학에서 오래전부터 관찰돼온 더 큰 패턴 하나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종 간 잡종이 불임이 될 때, 그 영향을 받는 쪽은 대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성염색체를 가진 성별입니다. 초파리와 인간 모두 수컷은 X염색체 하나와 Y염색체 하나를 갖고, 암컷은 X염색체 두 개를 갖습니다.

Y염색체는 원래 진화 속도가 빠르고 반복 서열도 많이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 다른 종이 교배할 때 나타나는 유전적 불일치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초파리가 이런 연구에 유용한 이유는 번식 속도가 빠르고 실험실에서 관찰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에 쓰인 두 종은 비교적 최근에 갈라진 만큼, 두 종이 완전히 다른 종으로 굳어지기 전, 그 초기 단계의 생식적 격리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어줍니다.

야마시타 교수는 "나는 종이 왜 서로 갈라져 양립할 수 없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정말 관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초파리를 넘어, 인간 질병 연구로 이어지는 단서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건 초파리 진화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연구에 쓰인 것과 비슷한 계산 기법은 매우 거대한 유전자와 관련된 인간 질병을 연구하는 데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인간 유전자는 수백만 개의 DNA 염기에 걸쳐 있어서 세포가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데, 여기에는 근육 질환이나 신경계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들도 포함됩니다.


정자 하나 만드는 데도 세포는 이렇게 정교한 '조립 매뉴얼'을 따라야 하고, 그 매뉴얼이 다른 종의 부품과 만나면 순식간에 어긋나버립니다. 100년 넘게 풀리지 않던 질문이 결국 '누가 DNA 조각을 순서대로 잘 이어 붙이느냐'라는, 의외로 소박한 지점에서 답을 찾은 셈입니다.

참고 논문: Adrienne Fontan 외, "Defective splicing of Y-chromosome-linked gigantic genes contributes to hybrid male sterility in Drosophila",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026년 2월 16일), DOI: 10.1093/molbev/msag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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